백제의 역사와 백제유적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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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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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곧 널이 퍼져 진평왕도 알게 되어 마침내 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법상, 미륵 삼회전, 탑, 낭무를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이름했다.
왕비는 쫓겨나는 공주에게 금 1말을 주었고 맛동은 공주를 데리고 백제에 돌아왔다. 이 말을 들은 맛동이 웃으면서 그와 같은 것은 자기가 마를 캐는 곳에 진흙처럼 많이 있다고 하였다. 맛동과 공주는 이를 보내기 위하여 용화산 사자사에 있는 지명법사에게 부탁을 하자 지명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 만에 산만큼의 금을 공주의 편지와 함께 신라 궁궐로 보내주었다.
또 신라의 진평왕도 여러 기술자를 보내 이를 도와 주었다고 한다. 공주는 왕비가 준 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살림 밑천을 삼자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공주가 놀라 맛동과 함께 가서 보니 과연 많이 있는지라 그 중 일부를 신라의 진평왕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선화공주가 맛동을 남몰래 숨겨 두고 밤마다 만나러 다닌다. 이와같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여 미륵사는 백제 무왕…(sk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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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에 신라의 진평왕은 그 신묘함에 놀라서 맛동을 매우 존경하게 되었고, 부자가 된 맛동은 인심을 얻어 백제 왕이 되었다.’라는 내용의 노래를 가르쳐 주어 이를 부르게 하였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 공주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은 다음 몰래 신라의 서울에 들어갔다.






즉 금마에 있는 오금산에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가 있었는데, 마를 캐어 먹고 산다고 해서 그 이름을 맛동이라고 했다.
그러나 절을 지으려면 못을 메워야 했으므로 지명법사에게 물으니 지명법사가 역시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허물어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어 주었다. 왕의 일행이 가마를 멈추고 미륵불에게 예배를 한 후에 왕비가 왕에게 이곳에 큰 절을 세우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매 왕이 이를 승낙하였다.
왕위에 오른 맛동이 어느날 왕비와 함께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그 못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났다.